신토불이의 허상



신토불이의 진실: 신뢰를 잃은 '우리 것'의 허상

1990년대,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구호는 대한민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다. 우리 몸에는 우리 땅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민족적 자부심과 건강에 대한 염원이 담긴 이 말은, 국산 농축산물 소비를 장려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구호는 본래의 숭고한 의미를 잃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상업적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언론에서는 중국산 농산물을 국내산으로 속여 팔거나, 품질이나 생산 방식에 특별한 차이도 없으면서 단지 '국내산'이라는 이유로 수입산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었다. 이러한 기만 행위는 '신토불이'가 내포했던 순수한 가치를 훼손하고, 소비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오늘날 국내 언론의 보도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과연 '신토불이'의 진실은 무엇이었으며, 그 그림자는 어떻게 현재까지 드리워져 있는지 비판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오염된 민족주의, '신토불이'의 그림자

'신토불이'는 단순히 농산물 소비를 넘어, 우리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자는 민족주의적 정서와 결합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일부 비양심적인 상인들에게 악용될 여지를 제공하였다. '우리 것'이라는 감성 마케팅 뒤에는 원산지 둔갑이라는 추악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이러한 행태는 2020년대 중반에 이른 현재까지도 끊이지 않고 보고되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의 단속 결과는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농관원은 온라인 플랫폼과 쇼핑몰 등에서 농식품 원산지를 속여 파는 사례를 다수 적발하였으며, 이는 중국산 원재료로 만든 식품을 국내산으로 둔갑시키거나, 소비자가 착각할 수 있도록 애매하게 표기하는 방식이었다.

원산지 둔갑의 민낯: '국내산'이라는 허울

최근 국내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신토불이'라는 허울 아래 원산지 둔갑이 여전히 만연함을 알 수 있다. 2025년 4월 한국일보는 "중국산 팥떡 '국내산' 둔갑"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원산지 거짓표시 67곳이 적발된 사실을 보도하였다. 주요 위반 사례로는 중국산 팥을 사용한 떡의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표시하거나, 호주산 소고기로 만든 가공품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오인하게끔 표시한 업체들이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농협 로컬푸드 매장에서도 이러한 원산지 둔갑 사례가 적발되었다는 사실이다. 2025년 8월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충남 지역의 한 농협 조합원이 중국산 참깨, 들깨, 팥, 녹두 등을 국내산으로 거짓 표시하여 판매하다가 적발되었다. 이 농업인은 중국산 농산물을 시장에서 구입한 뒤 자신의 창고에서 소포장하고, 생산자 주소를 허위로 기재하여 하나로마트 내 로컬푸드 매장에서 판매하였다고 한다.

로컬투데이 역시 2025년 8월, 논산시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약 9개월 동안 882kg, 1천 7백여만 원 상당의 중국산 농산물을 국내산으로 속여 납품, 판매한 농가가 적발되었음을 보도하며, 이는 지역 농산물 신뢰도와 지역 이미지 추락을 우려하게 한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원산지 허위 표시는 단지 일부 비양심적인 상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2024년 5월 한국경제는 중국산 콩 340톤과 녹두 9톤을 국내산 포장재에 담아 콩나물 제조업체 등에 판매한 일당이 구속 송치된 사건을 보도하며, 일반인이 맨눈으로 중국산과 국내산 콩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농협 상호를 무단 도용하여 판매하는 수법으로 소비자를 기망한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위반 행위에 대해 농관원은 거짓 표시 업체에 대해서는 형사입건(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하고, 미표시 업체에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강력한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매년 수백 건에서 수천 건에 달하는 원산지 표시 위반 사례는 이러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격 거품의 진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의 비극

'신토불이'가 강조하던 '우리 것'의 가치는 정작 터무니없는 가격 책정으로 이어지며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였다. 국내 농산물은 수입산에 비해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았으나, 그 차이가 품질이나 생산 방식의 우수성에서 기인하기보다 불투명한 유통 구조와 중간 유통 마진에 의한 것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KBS는 2024년 3월 "농산물값 절반 이상이 유통비…물류 체계 개선 시급"이라는 보도를 통해 우리 농산물의 소매가 절반 이상이 유통 단계 비용이라고 지적하였다.

농민이 포기당 800원에 출하한 배추가 소매점에서 5천 원 안팎에 팔리는 등, 산지 가격과 소비자 구매 가격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농산물의 중간 유통 마진은 선진국일수록 높아지는 특성이 있으나, 우리나라의 유통 구조는 특히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도매시장은 소수의 유통 주체 간 거래만 가능하여 경쟁이 제한되고 물류 비효율이 발생하며, 이는 최종 소비자가 모든 단계의 비용을 부담하게 만드는 구조라고 지적되었다. 농민은 제값을 받지 못하고, 소비자는 비싼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역시 이러한 농산물 유통 구조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 대책을 발표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진단부터 오류"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가격 급등락의 1차 원인이 유통이 아니라 수급 불균형이라는 지적과 함께, 대책이 온라인 전환과 거래 방식 변경에만 방점이 찍혔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농산물이 '금값'이 되었음에도 농부들은 돈을 벌지 못하고 버려지는 농산물이 발생하는 현실은, '신토불이'가 강조하던 '우리 것'의 가치가 유통의 비효율성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신뢰 상실의 대가: 무너진 '우리 것'의 가치

원산지 둔갑과 가격 거품은 결국 '신토불이'가 강조했던 '우리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소비자는 국내산 제품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가졌으나, 반복되는 기만 행위와 불합리한 가격에 실망하였다. 이는 단순히 개별 농산물에 대한 불신을 넘어, 국내 농업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농협 로컬푸드 매장에서의 원산지 위반 사례는 소비자들이 지역 농산물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드는 치명적인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언론은 경고하였다.

결론: '신토불이'를 넘어선 새로운 가치 모색

'신토불이'는 한때 우리 농업과 국민 건강을 위한 긍정적인 메시지였으나,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원산지 둔갑과 가격 거품 문제는 2020년대 중반에 이른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남아있다. 국내 언론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소비자의 알 권리 보호와 공정한 유통 질서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우리 것'이라는 감성적 구호를 넘어, 국내 농축산물의 진정한 가치를 정립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유통 구조를 확립하여 생산자는 제값을 받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원산지 표시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지속하고, 소비자들이 쉽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신토불이'가 지향했던 이상적인 가치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드리워졌던 어두운 그림자를 직시하고, 진정으로 '우리 것'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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